2014년 5월 26일 월요일

[Private Story] Start My Story - #2 남달랐던 유년기 시절

#My Story #2 - 남달랐던 유년기 시절

이 글은 스스로를 돌아 보며 생각하는 글이기도 하면서 먼 훗날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 밝음이와 맑음이가 글을 읽고 지금의 아빠를 그때의 너희가 이해할 수 있길 바라면서 남기는 미리쓰는 편지로 남았으면 한다. 너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빠는 할아버지의 흔적을 책장에 있는 책 몇권에 남겨진 사인이 전부란 사실에 가슴이 너무나 아팠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그래도 마지막 서명에 남겨진 할아버지의 뜻을 가슴으로 받았단다.

내 이야기를 다시 이어간다. 나는 유년시절 참 말썽꾸러기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이 되고 또 시골 어르신들의 기억속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온동네에 있는 외양간, 그리고 논과 밭이 나의 놀이터 였고 또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의 현장이기도 했었지. 하지만 그 때 내 기억속의 아버지는 무섭기만 한 존재였고 어렴풋이 기억나는건 지팡이를 들고 계시던 할아버지의 모습만 흐릿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운동을 좋아 했고 달리기를 보통보다는 좀더 나아가 400미터 계주로 부락(이게 국어사전의 표준어 인지는 모르겠다) 대표로 나갔었다. 자랑거리 아닌 자랑거리가 되었던 어린시절 난 아마도 운동선수는 되지 못하더라도 레져 스포츠 선생님이나 그쪽 분야에 분명 가 있을 것이라고 처음 미래에 대한 단꿈을 꾸웠었다.

그런데 나에게 첫 시련(? - 지나고 보니 시련이라기 보단 전환점)이 생겼다. 중학교 시절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매일 매일 저녁마다 피곤함을 이기지 못했다. 당연히 앉아서 가만히 있던 성격이 아닌 대부분의 시간을 운동을 하거나 밖에서 뛰어 논 것이 전부 였던 나 였으니 몸이 피곤한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 나의 몸에 이상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가까운 병원에 가서 피검사 결과 더 큰 병원에 가길 권했다. 어린나이에 뭐가 뭔지도 모르고 시내로 나간다는 즐거움이 더 컸을까? 기억해보면 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했던것 같다. 내가 느낀건 부모님 두분의 얼굴이 심각했다는 것 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전국에 몸에 좋다는 민간요법의 것을을 무진 찾아서 해주셨다. 이후에 알았는데 그 당시 치료제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부분 임상실험 중이었고 실제로 상용화 되기엔 시간이 필요 했다.

그 이후 많은 것들이 달라 졌다. 친구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했다. 다른 시간이 학교에 가고 다른 시간에 집에 가며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행동을 해야 했다. 내 학창 시절에 가장 힘든 시기 였던것 같다. 왜 나만 그래야 하는지 다르다는걸 인정 할 수 없었다. (물론 성적이 다르다는건 참으로 인정을 빨리도 그리고 진심으로 했다. ). 그 당시엔 생각하지 못했지만 지나고 보니 내가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아니 인생에 전환점 이었다고 기억에 남아 있다.

사는것 인생이란 단어에 큰 의미를 부여한 적도 생각해본적도 사실 없었다. 부끄럽단 생각을 하게 되었던 끝을 알 수 없는 병원 생활의 시작에서 난 장르를 불문한 독서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주로 시집을 읽게 되었다. 글씨가 너무나 많은 책들을 처음부터 접하기 참 힘들었고 알수 없는 끓어 오름이라는 그 무언가는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누구는 삼류 사랑 타령이란 시집부터 고전에 이르기 까지 아낌없이 읽고 또 읽었다.

( 그 당시 읽다 보니 쓰고 싶어 졌고 쓰다 보니 내 책을 내보고 싶단 생각도 했던것 같다. 아쉽게도 20살 혈기 왕성할 때 모두 불태워 버리거나 친구녀석(?)을 줬는데 아마도 다 버렸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

중간 중간 학기가 시작이 되면 난 다시 퇴원을 했고 방학이면 입원을 했다. 병원생활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렇게 재미난 경험은 아니라는 것. 난 학창시절을 그런 반복속에 살아 갔다. 그 당시 내 병실엔 나보다도 한참이나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많으셨다. 심하게 안좋으신 분들도 계셨고 피로가 누적되 그냥 몇일 쉬다가 가시는 분들도 계셨고 부족한 나의 사회성을 그 병실 자그마한 곳에서 새롭게 배워가고 있었다. 자그마한 6평 남짓한 곳엔 세상이 있었다. 각자의 인생을 풀어 내는 보따리가 항상 가득했다. 삶에 대한 후회도 있었고 나이가 지긋했지만 앞으로의 희망도 있었다. 하루종일 난 한마디 없이 그분들의 이야기를 오롯이 듣기만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일 당장 내가 여기서 죽는 다면 난 내 짧은 인생(삶)에 대해서 뭐라 말을 해야 할까? 이렇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끝내고 싶거나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아 있는 삶이 얼마인지 모르나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 해야 겠단 생각을 그리고 나만 생각하고 살지 않길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것이 다분히 착하게 살아야 겠다는 아니었다.

그 당시에 난 많은 것을 배운것 같다. 왜 살아 가는 하루 하루가 소중한지 알았고 정성을 다해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되는지 그리고 내가 처해진 상황에 대한 것을 진실되게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힘들어 지는건 나 하나 뿐 아니라 내 주변에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아파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 당시의 나는 가장 많이 성장한 시기이자 전환점이었다 생각을 한다. 너희들에게도 분명 나와 같은 시기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리라 생각된다. 분명 살면서 힘든 시기는 반드시 온다. 하지만 그때 꼭 기억하길 바란다. 가장 힘든시기에 가장 많은 기회와 본질적인 마음의 성장을 너희에게 가져다 줄 것이다. 피하려고만 하지 말길 바란다. 그것을 받아 들이 돼 진심으로 받아 들이고 마음에 새기고 새로운 네가 아닌 성장한 네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책을 읽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거라. 그곳엔 답이 없지만 앞으로 살아가야 할 너희들이 선택한 인생에 대한 답을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 너의 주변에게 너에게 말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말에 새겨 들어라 그 모든 말들은 너희들의 생각에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을 함께 주면서 어떤 말들이 올바른 선택을 위한 말인지 잘못된 말인지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줄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잠시전 그 시간도 후회없는 삶을 살길 바란다. 또한 나에게 남은 많은 시간들을 나도 그렇게 보내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노력하겠노라 약속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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