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3일 목요일

[Book #27] 에밀 - 장 자크 루소, 이환 편역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011
인간 혁명의 진원지가 된 교육서
" 에밀 "

장 자크 루소 지음
이환 편역











교육은 자연적 본성의 개발
『에밀』은 여러 측면에서 혁명적인 작품인데, 우선 교육의 대상과 목적을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인간의 원죄를 강조하는 기독교에서 교육이란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억압하고 그리스도의 모방을 통해 인간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한편 계몽주의 교육은 인간의 사회적 본성을 제대로 발현 시켜 사회적인 의무와 개인의 행복을 일치 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러나 루소는 "모든 것은 조물주의 손에서 나올 때는 완전하나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 변질되고 만다." 고 말하면서, 당시 사상적 주도권을 다투던 두 개의 이데올로기인 기독교와 계몽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인간이 사악한 것은 원래의 본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의 탓이며, 사회적 차원에서 정치 및 윤리의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아무리 개인의 사회성을 개발한다 하더라도 사회적인 미덕과 개인적인 행복은 일치할 수 없다. 따라서 고대 시민 국가처럼 시민이 "자신을 단일한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단일한 전체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며 전체 속에서만 자신을 느끼는"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공동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우위에 두는 시민을 양성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교육의 목적은 인간을 자연 상태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인가? 루소는 일단 자연 상태를 벗어나 사회 상태로 들어온 인간은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연으로의 복귀는 바람직한 것도 아닌데,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로부터 형성되는 애정이나 우정 혹은 인류애를 통해 자아를 확장할 수 있는 기쁨을 얻을 수 있으며 단순한 자연적 욕구가 아니라 보편적 이성을 통해 스스로 자신에게 부과된 법에 따라 행동하면서 도덕적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가능한 교육은 현재의 타락한 사회에 살면서도 자연의 선량함을 최대한 간직하고 자율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다. 즉 교육이란 인간의 잘못된 본성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본성을 개발하는 것이며, 기존 사회의 가치관을 주입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관을 정립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에밀]의 교육 방법
예전의 교육자들은 어린이를 미 성숙한 어른 정도로 파악했지만, 루소는 어린이를 그 자체의 고유한 활동이 있는 존재로 파악한다. 유년 시절을 포함하여 인생의 각 단계는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갖고 있으며, 교육은 각 단계가 갖는 가치를 최대한 실현 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에밀』은 단순한 교육론 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정신적 능력의 연속적인 형성 과정을 통해 전개되는 보편적 인간의 성장 소설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힘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휘하며, 자연적인 충동에서 나오는 감성에 합리적인 통제력을 부과함에 따라 완벽한 인간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본다.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도덕적 의지에 통합하는 과정은 끊임없는 규범적 통제 아래서 매우 느리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에밀은 자신의 한계를 충분히 인식하고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인간의 조건을 완전하게 그리고 의식적으로 맛보게 될 것이다. 루소는 이러한 인간의 발달 과정에 맞추어 교육 방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첫 번째 단계는 자연에 의한 교육으로 자연적으로 주어진 인간의 능력과 기관을 자연의 원래 의도에 따라 발달 시키는 것이다. 이는 인위적으로 조절될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이 단계에서는 오직 자연의 순조로운 발달을 위해 그 발달을 방해하는 것을 막는 '소극적 교육'이 주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 단계인 사물에 의한 교육은 사람이 외부 세계의 사물과 접촉해 얻는 체험 또는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지식 획득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 세계에 대한 지식이 생활의 유용성과 결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목적을 위해 필요한 책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세상에서 고립되어 사물들의 세계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삶을 그린 『로빈슨 크루소』이다. 오직 생존이라는 관점에서 사물과 관계를 맺는 고립된 인간은 그 관계를 사회적 편견이 아니라 오직 유용성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계인 인간에 의한 교육은 교육자의 재량이 가장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는 교육으로서 이때부터 비로소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를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도덕적 자질을 함양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시작된다.

위 내용은 이용철 교수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불어불문학과)의 글을 발췌 하였음

개인적인 소견
항상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자식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나의 부모님이 해주셨던 방법과 내가 경험하면서 느낀점들 그리고 책을 통해서 배우는 여러가지 아이들에 대한 교육의 방법들에 대해서 보고 듣고 경험하게 되는 것들을 말이다. 나에게 "에밀"은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읽다 보니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좀 격렬하고 직설적인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지만. (물론 뒤에서 에밀의 생에 대한 부분을 좀더 찾다 보니 본인이 직접 경험했던 그 유년기 시절의 불우함(?)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고 조금은 공감이 되기도 하였다 ). 대체적으로 아이들의 대한 자연적 본성의 개발이 교육에 반드시 필요 하며 그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공감하는 바이며 또 그것이 나에겐 좀 부족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론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의사소통이 되기 시작하긴 전까진 그래 그냥 본인의 욕구나 의지대로 하게 두는것이 좋겠다. 단 의사소통이 되는 시기에서 부터는 내가 가진 기본적인 약속(?) 규율을 지켰으면 하면서 이야기 하고 습관으로 자리 잡게 하는게 좋겠다 생각을 했는데 직접 하다 보니 반감만 더 생기고 또 서로의 관계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물론 분명 부모인 나의 잘못일 것이다. 그러한 규율과 습관을 내가 잡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기 보단 어떠한 생각으로 그러한 것들을 교육하고 알려 주는 것이 좋겠는가 라는 고민의 한 부분이지 않을까 에밀의 교육 방법이 맞는다기 보다는 읽다 보니 그래 그럼 이렇게 해볼까? 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접근해보니 기존과는 좀 다른 반응이 나오는것을 몸소 경험하게 되고 나서부터는 좀 다른 시각으로 책이 달라 보인다.

아이들을 떠나 나 하나의 개인적인 교육이나 성장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도움이 된 부분은 뭔가에 얽매이듯 책만 읽어내고 있는 그런 지식은 지식이 아니다라는 표현이 있었다. 경험과 자연을 이해하고 감동을 받으려고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은 아니었나. 가까운 공원에 가까운 산책코스에 가서 자연 그대로의 나무 향기와 풀내음 스치듯 지나가는 봄바람을 맞아야 겠다고 생각이 드는 것도 에밀이 나에게 준 또 다른 작은 변화는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우거나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친구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어떠한 방법이 어떠한 하나의 관념과 생각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기 보단 우리가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아주 근본적인 관점과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찾아 가는 그 과정이 내가 아이들과 함께 성장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 성장 과정에 친구 같은 부모로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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